Cryptopatriology

 

서울대학교 예술복합연구동 우석갤러리 1,2 전시실
2024. 07. 19 – 07. 30
기획 김윤지 장유정
참여작가 차혜림 이재빈 강세윤 송유경

함께 미술을 공부하는 동료인 김윤지와 장유정은 지난 겨울, 가족과 자신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의 이유로 원가족으로부터 떠날 준비를 하거나 이미 떠나온 친구들, 여전히 내부에 머무르는 친구들. 각자 다른 곳에 속하고 다른 곳을 향하지만 우리는 모두 ‘가족을 어떻게 떠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한국의 가족정치-가족제도 속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퀴어’한 이야기는 언제나 가장 사소하고 내밀한 영역인 가정으로부터 시작한다. 비록 똑바로 마주 보기는 두렵더라도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 손에 닿는 거리의 현실을 비틀어 보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이들의 퀴어링은 조형의 원인이 되는 현실의 구조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 첫 번째 응답으로 선보이는 《Cryptopatriology 환상종아버지학》은 가부장 사회 속 신화적 존재인 ‘아버지’에 대한 연구를 일컫는 조어로, 본 전시를 통해 새로이 제안하는 유사-학문이다. 딸바보 아버지, 건국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 오늘날 우리의 삶과 사회에 뿌리깊이 배어 있는 존경과 사랑, 동일시, 혹은 전복적 분노, 체념 등의 대상으로서의 ‘아버지’는 과연 실재하는 것일까?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속에 스며든 ‘아버지(들)’의 존재를 살펴보고, 이에 대하여 대화 나누기를 시도하였다. 네 명의 작가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저마다의 ‘아버지’를 소환한다. ‘아버지’는 생각보다 작고 좋은 냄새가 날 수도 있다. ‘아버지’는 우리의 말과 행동에, 어쩌면 작업 속에 거할지도 모른다.

강세윤이 사용하는 모에화의 문법은 가족제도의 위계와 부조리함에 유감을 표하며, 성역화된 가부장제 질서를 오타쿠적 욕망으로 세속화한다. <앱얼쥐스>(2019)는 연약하고 부드러운 소동물 ‘앱얼쥐’의 모습으로 아버지의 권위를 변질시키려는가 하면, 이러한 욕망은 <알쓸신잡 시청자의 리빙 메시지>(2022)에서는 아버지 세대를 향한 청년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벽과 하나되어 달라붙은 <아빠 설정>(2024)은 이 공간에 무수한 ‘아버지’들의 모습을 새겨넣는다. 컷 프레임 너머로 그들의 일대기가 분절되어 그려지고, 그 속에서 ‘아버지’는 과장되게 그로테스크하거나 깜찍한 모습으로, 혹은 민주화 항쟁의 불씨를 피우는 젊은이나, 파산 직전인 최고경영자의 편지의 형태로 나타난다.

질병과 죽음, 애도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를 시도하는 송유경은 지역에 전해져 내려오는 구전 설화를 기반으로 신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주목한다. <수호신이 사라진 세계>(2022)는 감염병으로 대면 접촉이 금지된 시대에 맞닿는 몸과 목소리를 통해 ‘연대’의 감각을 일궈내기를 시도하고, 서로가 서로의 수호신이 되는 새로운 신화를 상상한다. <동자삼과 방화증>(2024)은 자식의 희생으로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는 전통 설화 속 만병통치약 ‘동자삼’을 둘러싼 이야기를 자식의 관점에서 퀴어적으로 재해석한다. 현실과 신화, 신체와 공간,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는 구글어스의 균열된 이미지 속에서 ‘ 나’의 죽음과 ‘아버지’의 삶은 뒤섞여 하나가 된다.

이재빈은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자란 비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기저에 두고 중간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종교를 미술과의 접점 속에서 시각화한다. <십 개의 구멍>(2024)을 구성하는 종교적 도상들은 AI 기술로 제작된 매끈한 이미지로, 불온한 신체가 열어젖히는 ‘리미널리티’의 가능성들을 예시한다. 변이하고 증식하는 온갖 구멍의 이미지는 성별이분법을 가로지르며 견고한 ‘아버지’ 신체를 불확실한 것으로 와해시킨다. <Lovin Knives>(2024), <부인>(2024), <두 발>(2024) 등에서 나타나는 형상의 양가성은 상징의 의미작용을 복잡하게 헝클어뜨린다.

철저한 리서치를 통해 유물에 기입된 근대성과 제국주의의 역사를 수집하고 그 속에서 이미지를 차용하여 조각을 만드는 차혜림은 창작자로서 자신의 내면 속 ‘아저씨스러움’에 주목한다. 뼈대만 남은 채 멀대같이 선 목재 구조물과, 작가의 손으로 재구성된 전통 유물의 껍데기 안에서, 연구를 기반으로 한 예술에 응당 기대되는 내용의 중압감은 흙의 무게감으로 가라앉고 연구의 지적 노동은 작가의 육체 노동으로 치환된다. 미래에 태어날 자식을 위해 가구를 만드는 아버지의 태도로 제작된 <동년배>(2024)가 비록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준비된 프로토타입일지언정, 어쨌건 그의 조각들은 엮이고 빚어져 그 다음을 받아낼 준비를 하는 몸을, 무게를 가진 몸을 만들어낸다.